Note_Hanami (Text)

Sometimes I come to be suspicious of my being itself when left alone at the atelier. What does it mean that I exist. As if I came to know about myself and others while I was getting along with them, maybe I need a mirror called others. I longed for photographing people.

Last spring, I did a lot of tests and experiments, adjusting a lens value. When photographing various objects at the atelier, I was happy because it seemed I could control every screen. Encountered quite a few variables, however. Photographing with a blurry focus gave me a feeling like a sketch so that day I worked with a focus unadjusted. I thought it was good to express a subjective impression within a situation rather than getting stuck with individual expressions or dresses. It was a mode fitting for my imagery of others.

Late fall I planned a trip. Seemed that it was easy to objectify new places or persons on my journey. Expecting the spring of Japan, I read several books including a handbook for < L’être et le néant> by Sartre. I began to read it since Sartre said ‘others’ as the third domain of the being and it had many analyses on things felt in an everyday life. I could sympathize with many things though it is a philosophy book. Maybe because a theme of others may not be considered regardless of daily lives.

Hanami is the work depicting people enjoying cherry blossoms on March and April in Japan. I planned to make certain place and time, event situation into the work since I wanted people and the scenery whose perspective and attention are in such a situation and who may be objectified completely. I also want to record the imagery of ‘others’ in a detailed manner hereafter. I long for specifying not faces of people but things conveyed as the crushed images that exist only in certain situation and impression. I think those who may be both everyone and none are close to a present image of others.

작업실에서 혼자 계속 지내다 보면 내 존재 자체를 의심하게 될 때가 있다.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일까.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지낼 때 그 사람들과 내 자신에 대해 알게 되었던 것처럼 어쩌면 타인이라는 거울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. 사람을 찍고 싶어졌다.

작년 봄에는 명동에서 렌즈 값을 조절해서 테스트 겸 여러 실험을 하고 있었다. 작업실에서 사물을 찍을 때는 내가 화면을 모두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 좋았는데, 거리에 나오니 여러 변수와 마주쳤다. 초점을 흐려 찍으니 스케치한다는 느낌으로 오히려 좋게 생각되어 그날은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작업했다. 사람을 찍을 때도 개인개인의 표정이나 옷차림에 매이기보다는 그 상황의 주관적인 인상을 표현하기에 좋고, ‘타인’에 대한 내 심상과도 잘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.

늦가을에는 여행을 계획했다. 여행을 가면 새로운 장소나 사람들을 대상화하기가 쉽다고 느껴진다. 일본의 봄을 기대하면서 몇 가지 책을 읽었는데 사르트르의 <존재와 무>의 해설서도 있었다. 사르트르가 존재의 세 번째 영역으로 ‘타자’를 이야기했기 때문에 읽기 시작했는데 평소에 생활 속에서 느끼는 점에 대해 분석하고 있는 것이 많았다. 철학서임에도 불구하고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아마도 타자, 타인이라는 주제와 문제의식이 일상과 떼어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.

Hanami 는 일본에서 3월과 4월, 벚꽃을 즐기는 사람들을 담은 작업이다. 장소와 시간, 일종의 이벤트적 상황을 작업으로 가져올 생각이었다. 시선과 관심이 그 상황에 있는, 완전하게 대상화할 수 있는 사람들과 그 풍경을 원하기 때문이었다. 앞으로도 ‘타인들’에 대한 심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기록해보고 싶다. 구체화하고 싶은 것은 사람들의 얼굴이라기보다는 어떤 상황과 인상만으로 존재하는 뭉개진 이미지들로 전해지는 것들이다. 누구나 될 수 있고 아무도 아닌, 익명성을 획득하는 그들이, 지금 가지고 있는 타인의 이미지와 가깝다고 생각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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